곽재식은 2007년부터 옛 문헌에 등장하는 한국의 괴물을 채집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해 왔다. 여기에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옛날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 조사차 시작한 일이었다.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알려진 모습이 아니라 진짜 옛날 사람들이 남긴 진짜 옛날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바람이 있다면 자신 같은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 정도였다. 그사이에 그의 블로그는 민속학 연구자, 소설가, 게임 및 웹툰 시나리오 작가,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학생 등의 참고 자료로 활용되면서 암암리에 ‘온라인 괴물 소굴’로 알려져 왔다.
이 책 『한국 괴물 백과』는 곽재식이 그렇게 채집한 한국 괴물들을 이강훈의 일러스트와 함께 엮은 것이다. 그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곽재식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괴물들에 관한 묘사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에게 도깨비는 모름지기 정수리에 뿔이 돋아나 있고 거적 비슷한 천을 몸에 두른 채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구미호는 풀어헤친 머리에 소복을 입고 꼬리 아홉 개가 달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정확한 근거 없이 평소에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경우가 제법 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곽재식은 괴물을 채집하기 전에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용재총화』, 『어우야담』,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문선』, 『대동야승』 등 18세기 이전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괴물로 한정하고, 괴물을 소개할 때 되도록 자의적 해석을 배제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대신 괴물이 기록된 문헌의 특징적 구절을 이름으로 삼고, 괴물을 설명할 때는 괴물이 기록된 문헌이나 괴물을 묘사한 공예품 등을 참고했다. 그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구전된 괴물은 배제했다. 성격이 비슷한 괴물은 한데 합치고, 이름이 같더라도 모습과 성격이 다르면 다른 괴물로 분리했다. 괴물을 묘사한 일러스트 또한 곽재식이 정리한 자료에 기반을 두었다. 어떤 면에서 ‘괴물’보다는 ‘한국’에 방점이 찍힌 이 책은 괴물을 둘러싼 상상력의 기원을 찾아보려 한 결과물 또는 궤적이다.
/ Writer 곽재식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140자 소설』 등 다수의 장·단편 소설을 비롯해 글쓰기에 관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등을 썼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영화화 계약이 완료되어 제작을 기다리고 있으며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는 드라마 「스위치」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MBC ‘심야괴담회’,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 tvN ‘다빈치 코드’ 등 대중매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이상한 사건 속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편, 2007년부터 한국의 옛 기록에 등장하는 괴물 이야기를 정리해 인터넷에 ‘괴물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해 왔으며, 그 내용은 많은 창작자에게 알려져 소설, 만화, 학술 논문 등의 소재가 되었다.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시각예술가. 관심사에 따라 흘러 다니며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300여 권의 단행본에 그림을 그렸고 『도쿄 펄프 픽션』, 『나의 지중해식 인사』 등을 쓰고 그렸다. ‘월간 윤종신’의 미술 부분 디렉터, 제20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다.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2021년부터 새로운 미술 영역으로 등장한 NFT아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NFT아트 플랫폼 슈퍼레어(SuperRare)에서 1년간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행, 총 365개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현재 새로운 프로젝트를 모색 중이다.
/ Publisher 워크룸 프레스 workroompress
워크룸 프레스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입니다. 2006년 12월 문을 열었으며 동시대 시각문화와 타이포그래피, 인문학에 관심을 둡니다. 디자인을 기반으로 다른 영역을 기웃거리며 문학을 동경하는 한편 실용을 추구합니다.